순서를 잘못 잡으면, 회생계획이 인가돼도 위기는 다시 찾아온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의 경영진과 채권단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재무구조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가.”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이 급한지, 자산을 팔아 현금부터 만드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사업 자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인지 순서가 정리되지 않으면 회생계획은 방향을 잃는다. 필자는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이자 한국M&A컨설팅협회 사무총장으로서 다수 회생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M&A 자문을 수행하며, 순서를 잘못 잡은 기업은 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입해도 살아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해 왔다. 재무구조 개선은 부채를 줄이는 산술 문제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손을 대야 기업가치가 회복되는지를 설계하는 경영전략의 문제다.
재무구조 개선을 '빚 줄이기'로 오해하면 실패한다
많은 경영자, 심지어 일부 자문사조차 재무구조 개선을 채무조정, 즉 빚을 깎는 절차로 좁게 이해한다. 그러나 채무재조정은 재무구조 개선의 수단 중 하나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부채를 탕감받고 상환기간을 늘렸다고 해서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무구조가 개선됐다고 말하려면 부채비율이나 자본잠식 여부 같은 숫자만이 아니라, 그 기업이 스스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이 관점을 놓치면 회생계획 인가를 받고도 몇 년 안에 다시 유동성 위기를 맞는 기업을 만들게 된다.
첫 번째 출발점은 '진단'이다 — 현금흐름과 손익구조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재무구조 개선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차대조표의 부채총액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금흐름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영업활동에서 현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아니면 영업손실이 누적되며 차입으로 연명하고 있는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여기에 원가구조, 고정비 비중, 매출채권 회전율, 재고자산 건전성까지 살펴야 비로소 진짜 병목이 어디에 있는지가 보인다.
“재무구조 개선의 첫 단추는 얼마를 깎아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기업이 왜 현금을 벌지 못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 진단 없이 채무조정부터 시작하면, 회생계획이 인가돼도 사업 자체의 병목은 그대로 남는다. 필자는 회생기업을 자문할 때 법률적 절차보다 먼저 현금흐름, 원가구조, 고객구조, 경영진 역량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단계 — 부채구조 재편: 출자전환과 채무재조정으로 자본잠식을 해소한다
진단이 끝나면 비로소 부채구조 재편에 들어간다. 대표적인 수단이 출자전환이다. 출자전환은 채권자가 보유한 대출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회사는 부채를 줄이고 채권단은 주주로서 향후 자본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상환유예, 이자율 조정, 일부 채무면제 등 채무재조정이 결합되면 자본잠식을 해소하고 부채비율을 정상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출자전환은 만능이 아니다. 사업경쟁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채구조만 고치면, 시간이 지나 다시 자본잠식에 빠지는 사례가 반복된다.
| 반면교사 사례 ① 자금 지원만으로는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성동조선해양 한때 수주잔량 기준 세계 10위권까지 올랐던 성동조선해양은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뒤 8년에 걸쳐 채권단으로부터 약 4조 원의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경영정상화에 이르지 못했다. 2018년 3월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후 세 차례에 걸친 공개매각이 모두 무산됐다. 2019년 10월 회생계획 인가기한마저 넘기면서 청산이라는 갈림길에 놓였다. 이 사례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자금을 투입하고 부채조건을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박 대금을 후취하는 '헤비테일' 수주구조와 지속된 수주절벽이라는 사업경쟁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자금지원만 반복한 결과, 회사는 더 깊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재무구조 개선은 돈을 넣는 순서가 아니라, 사업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바뀌는 순서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사례는 보여준다. 참고: 이투데이(2018.3.8, 2019.7.22), 한국경제(2019.7.22) 보도 종합 |

세 번째 단계 — 사업구조조정과 비핵심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한다
부채구조를 재편했다면 다음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단계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 유휴 부동산, 비핵심 자회사 지분 등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핵심사업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먼저 정하는 일이다. 핵심 경쟁력을 지닌 사업까지 급한 유동성 확보를 이유로 매각하면, 재무구조는 개선돼도 정작 회사를 다시 성장시킬 엔진을 잃게 된다. 조직과 인력 재편도 이 단계에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네 번째 단계 — M&A를 통한 자본 확충과 경영정상화
자체 자금과 채무조정만으로 정상화가 어려운 기업은 제3자 M&A를 통해 새로운 자본과 경영역량을 결합해야 한다. 서울회생법원도 회생기업의 인가 전·인가 후 M&A 및 주요 자산 매각 과정에서 매각절차, 입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 단계의 M&A는 회생기업의 '매각'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받고 재무구조 개선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로 봐야 한다.
| 성공 사례 ② 회생절차와 M&A의 결합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완성한 팬오션 국내 최대 벌크선사인 팬오션(옛 STX팬오션)은 2013년 모기업 STX그룹의 유동성 위기 여파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신용등급은 채무불이행 수준인 D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 안에서 채무를 조정하는 동시에, 2015년 하림그룹을 인수자로 하는 M&A를 통해 새로운 자본을 수혈받으며 약 2년 만에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했다. 채무재조정에만 그쳤다면 사업경쟁력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인수자의 자본력과 영업물량(캡티브 물량)이 결합되면서 이후 해운업황 회복과 맞물려 실적이 빠르게 정상화됐다. 이는 재무구조 개선의 마지막 단계에서 M&A가 단순한 '매각'이 아니라 '재도전을 위한 자본 결합'으로 작동한 대표적 사례다. 참고: 머니투데이(2017.12.4), 딜사이트 보도 종합 |
재무구조 개선은 '순서'가 성패를 가른다
정리하면 회생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① 현금흐름과 손익구조 진단 → ② 출자전환·채무재조정을 통한 부채구조 재편 → ③ 사업구조조정과 비핵심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 → ④ M&A를 통한 자본 확충과 경영정상화의 순서로 이뤄져야 한다. 이 순서를 건너뛰거나 거꾸로 진행하면, 회생계획은 인가받아도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할 뿐이다. 성동조선해양처럼 진단 없이 자금만 투입하면 자본잠식이 반복되고, 팬오션처럼 진단과 부채조정, 자본 결합이 순서대로 이뤄지면 두 번째 성장곡선을 그릴 수 있다.
나는 회생기업을 자문할 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재무구조 개선의 목표는 부채비율을 낮추는 숫자가 아니라, 이 회사가 스스로 현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답을 찾는 순서를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회생기업 재무구조 개선의 출발점이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재무구조 개선과 채무조정은 같은 말인가요?
A. 아닙니다. 채무조정(출자전환, 상환유예, 이자율 조정 등)은 재무구조 개선의 한 수단일 뿐입니다. 재무구조 개선은 부채구조 재편에 더해 사업구조조정, 자산매각, 필요시 M&A까지 포함해 기업이 스스로 현금을 창출하는 구조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Q. 출자전환을 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은 어떻게 되나요?
A. 통상 대주주 감자와 채권단 출자전환이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기존 지분이 크게 희석되거나 소각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 비율은 회생계획안과 채권단 협의에 따라 달라집니다.
Q.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M&A는 반드시 필요한가요?
A. 자체 현금흐름만으로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이라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본잠식이 깊거나 신규 투자 여력이 없는 기업은 제3자 자본과 결합하는 M&A가 재무구조 개선을 완성하는 핵심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재무구조 개선을 시작해야 할 신호는 무엇인가요?
A.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이거나, 차입으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렵거나, 자본잠식률이 확대되고 있다면 즉시 진단에 착수해야 합니다. 신호가 나타난 뒤에도 손을 대지 않으면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줄어듭니다.
필자 소개
윤병운 |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 · 한국M&A컨설팅협회 사무총장. 기업회생·기업구조조정·M&A 분야의 실무 전문가로서, 다수의 위기 기업 재무구조 개선과 회생기업 M&A 자문을 수행해 왔다. '재무구조 개선의 순서가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경영자들의 구조조정 의사결정을 돕고 있다.
참고자료 · 출처
① 이투데이, “성동조선 법정관리ㆍSTX는 한 달 유예”, 2018.3.8. / “[종합] 성동조선, '투자자 자금력 미비' 3차 매각도 무산…'청산 위기'”
② 한국경제, “성동조선, 기사회생-파산 '갈림길'…남은 시간 3개월”, 2019.7.22.
③ 머니투데이, “팬오션, 턴어라운드 탄 해운업 대표주로 부상”, 2017.12.4.
④ 딜사이트, 팬오션·STX그룹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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