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규모가 아니라 '기업가치'와 '구조조정 역량'이 생존을 결정한다

경영자나 채권자를 만나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 있다. "이 회사, 부채가 이렇게 많은데 살릴 수 있습니까?" 부채총계, 부채비율, 차입금 규모 같은 숫자만 보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이자 한국M&A컨설팅협회 사무총장으로서 기업회생과 M&A 현장에서 수많은 기업의 흥망을 지켜보며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 왔다. 부채가 많다는 것 자체는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채비율이 수백 퍼센트에 이르렀던 기업이 회생절차와 M&A를 거쳐 흑자 기업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는가 하면, 채권단의 오랜 자금 지원을 받고도 끝내 청산된 기업도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부채비율은 결과일 뿐, 생사를 가르는 원인이 아니다
재무제표만 놓고 보면 부채비율 300%인 기업과 500%인 기업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단순 비교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 그러나 부채비율은 과거 의사결정의 '결과'이지, 그 기업의 미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하는 '원인'이 아니다. 회생 가능성을 판단할 때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부채총액이 아니라 세 가지다. 첫째, 영업활동에서 실제로 현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구조가 남아 있는가. 둘째, 기술력·수주잔량·거래처·브랜드처럼 부채와 무관하게 별도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핵심자산이 있는가. 셋째, 그 자산과 사업을 다시 살릴 새로운 자본과 결합할 수 있는가. 부채가 아무리 많아도 이 세 가지가 살아 있다면 회생과 M&A를 통한 정상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법원과 채권단이 보는 기준은 '청산가치'가 아니라 '계속기업가치'
기업회생 실무에서는 회사를 지금 청산했을 때 회수할 수 있는 '청산가치'와, 사업을 계속 운영했을 때 만들어낼 수 있는 '계속기업가치'를 비교한다.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고 판단되면, 부채 규모가 크더라도 회생절차를 통해 사업을 존속시키는 쪽이 채권자에게도 더 유리하다. 서울회생법원이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인 ARS와 최근의 pre-ARS, 하이브리드 구조조정까지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채 규모만으로 퇴출 여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앞으로 만들어낼 가치를 더 정교하게 판단하려는 것이다.
| 성공 사례 ① 막대한 부채에도 기술력으로 살아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대우조선해양은 오랫동안 산업은행 관리 체제 아래 놓여 있던,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고부채 기업이었다. 2022년 기준 자산총액은 약 12조 원에 이르렀지만, 부실한 재무구조는 업계에서 공공연한 약점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한화그룹은 2022년 12월 약 2조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본계약을 체결했고, 2023년 5월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회사명을 '한화오션'으로 바꿨다. 한화그룹이 막대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명확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선박 건조 기술력과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수주 역량, 숙련된 인력이라는 자산이 부채 규모와 별개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 한화오션은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방산·에너지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해 경영정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례는 부채총액이 아니라 '그 부채 뒤에 남아 있는 기업의 실질가치'가 생존과 M&A 성사의 진짜 기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참고: 딜사이트 2022.12.16 / 토요경제 2022.12.21 / 스마트투데이 2023.05.24) |

부채를 줄여도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이 있다
그렇다고 자금 지원이나 채무조정만 있으면 모든 기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장에서 더 자주 목격하는 것은 채권단의 지원으로 부채 부담을 상당히 덜어냈음에도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다. 이는 재무구조 개선이 '빚을 줄이는 것'에서 멈췄을 뿐, 정작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반면교사 사례 ② 4조 원을 지원받고도 청산된 성동조선해양 한때 수주잔량 기준 세계 10위권까지 올랐던 중견 조선사 성동조선해양은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이후 약 10년 가까이 지원을 받았다.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투입한 자금만 3조 2,000억 원, 채권단 전체로는 약 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8년 3월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매각 절차가 모두 무산되면서 2019년 청산의 기로에 섰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신규 수주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인수 의사를 밝힌 투자자들조차 인수자금 조달 방안을 확보하지 못해 물러섰다. 채권단의 지원이 장부상 부채비율은 낮춰줄 수 있어도, 시장에서 새로운 일감을 따내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경쟁력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성동조선해양의 사례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참고: 이투데이 2018.03.08 / 한국경제 2019.07.21) |
부채가 많아도 살아남는 기업의 공통점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두 조선사의 명암은 부채 규모가 아니라 다음 세 가지 요소에서 갈렸다.
첫째, 부채와 별개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핵심자산이 남아 있었는가. 기술력, 수주 역량, 브랜드, 고객 기반은 재무제표의 부채 항목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별도의 가치다.
둘째, 새로운 자본과 결합할 수 있는 구조였는가.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이라는 전략적 투자자를 만나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고 경영권을 결합시켰다. 부채가 많은 기업일수록 자체 자금만으로는 정상화가 어렵기 때문에, M&A를 통한 신규 자본 유치 여부가 생존의 분수령이 된다.
셋째,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구조 개편이 함께 이루어졌는가. 단순히 출자전환이나 상환유예로 부채비율만 낮추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수익성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며, 현금흐름을 개선하는 사업재편이 동반되어야 재무구조 개선이 실질적인 효과를 낸다.
경영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진단'이다
부채가 많은 기업의 경영자에게 내가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은 섣부른 포기도, 무조건적인 버티기도 아니다. 정확한 진단이다. 재무제표상의 부채 규모만 보고 절망하거나, 반대로 근거 없는 낙관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모두 위험하다. 현금흐름표를 통해 영업활동에서 실제로 돈이 들어오고 있는지, 핵심자산의 시장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지금 청산했을 때의 가치와 사업을 지속했을 때의 가치 중 무엇이 더 큰지를 냉정하게 비교해야 한다. 이 진단 결과에 따라 회생절차, 워크아웃, ARS, M&A 등 적합한 구조조정 방식이 달라진다. 나는 기업회생 컨설팅을 할 때 법률적인 절차보다 이 진단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결국 부채가 많은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여부는 법원이나 채권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여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남아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론 — 부채는 사망선고가 아니라 진단 항목이다
부채가 많다는 사실은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신호일 뿐, 그 자체로 사망선고는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막대한 부채에도 한화그룹과의 M&A를 통해 두 번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반면, 성동조선해양은 4조 원에 이르는 지원을 받고도 사업경쟁력을 되찾지 못해 청산의 길을 걸었다. 이 두 사례가 공통으로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부채총액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부채 뒤에 남아 있는 기업가치와 이를 되살릴 구조조정 역량이라는 것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빚이 많은가'가 아니라, '이 기업에 아직 살릴 가치가 남아 있는가'이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부채비율이 몇 % 이상이면 회생이 불가능한가요?
A.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회생 가능 여부는 부채비율이 아니라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은지, 그리고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구조가 남아 있는지로 판단합니다.
Q. 출자전환만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나요?
A. 출자전환은 부채를 자본으로 바꿔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기업이 정상화되지는 않습니다. 수익구조 개선과 사업재편이 함께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어집니다.
Q. 부채가 많은 기업을 인수하는 M&A는 위험하지 않나요?
A. 부채 규모만 보면 위험해 보이지만, 기술력이나 시장지위 같은 핵심자산을 상대적으로 유리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대표적입니다.
Q. 채권단의 지원을 받았는데도 청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자금 지원은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지만, 신규 수주나 매출 확대 같은 사업경쟁력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지원이 사업구조 개편과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기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병운 |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 · 한국M&A컨설팅협회 사무총장
필자는 기업회생·기업구조조정·M&A 분야의 실무 전문가로서, 다수의 위기 기업 정상화와 회생기업 M&A 자문을 수행해 왔다. '부채 규모가 아니라 기업가치가 생존을 결정한다'는 관점으로 경영자와 채권자의 의사결정을 돕고 있다.
참고자료 및 출처
● 대우조선해양, 한화그룹으로…본계약 체결, 딜사이트, 2022.12.16.
● [데스크 칼럼] 한화그룹,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부쳐, 토요경제, 2022.12.21.
● 하루 늦게 도착한 축포..대우조선해양 아니 한화오션 7% 급등, 스마트투데이, 2023.05.24.
● [대우조선 매각] 세계 4위 조선사 인수 한화그룹 자산 100조 육박, 주간경향/다음뉴스, 2022.09.26.
● 성동조선 법정관리ㆍSTX는 한 달 유예, 이투데이, 2018.03.08.
● [종합] 성동조선, '투자자 자금력 미비' 3차 매각도 무산…'청산 위기', 이투데이.
● 성동조선, 기사회생-파산 '갈림길'…남은 시간 3개월, 한국경제, 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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